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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오픈소스 라이선스의 차별 없음

by 류창우

페이스북 글에서 가져옴.

지난 주 “카카오, 오픈소스SW 저작권 침해했나” 기사에 대한 짤막한 평가에 대해 저를 원망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기사와 여러 정보를 접한 현재에도 그 판단은 동일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처음 오픈소스를 소개 받을 때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오픈소스정의(Open Source Definition)에 있는 “차별 없음”(No Discrimination)이라는 조항입니다. 오픈소스 정의에는 이 문구가 두 군데에서 등장하는데, “No Discrimination Against Persons or Groups” 즉 특정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하고, “No Discrimination Against Fields of Endeavor” 즉 사용 용도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은 사용 금지” 또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 금지”와 같이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죠. 이 예를 듣고 나면 너무나도 당연한 조항입니다. 이러한 제한이 있으면 그런 소프트웨어는 오픈소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예를 듣고 보면 쉽게 이해될 것 같은데, 좀 극단적으로 말해 보면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테러리스트가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데 오픈소스를 허용해야 한단 말이야? 사람들이 죽는데?” 이런 얘기는 특히 테러 뉴스를 많이 듣는 서양인들의 오픈소스 라이선스 관련 토론에서 흔히 나오는 얘기입니다. 오픈소스 정의를 기준으로 거기에 대한 정답은, “네 허용해야 합니다”일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시면 “테러를 옹호하는가?”라면서 거부감이 드는 분들이 있겠죠. 일단 저작권자가 허용하든 안 하든 테러리스트가 라이선스를 철저히 지킬 것 같지도 않고, 또 테러는 어차피 불법이므로 라이선스 위반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처벌하고 예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금지하고 특정 목적을 금지하고 하다 보면 과연 어디에 금지와 허용의 선을 그어야 하는 걸까요? “테러리스트 사용 금지”를 넘어서 “사형 집행용으로 사용 금지”, “낙태 시술 병원에서 사용 금지”, “동성애 옹호 단체에서 사용 금지”, “외국인 사용 금지”, “반정부 집회에서 사용 금지”, “나한테 악플 달았던 나쁜 아무개는 사용 금지”, “악플 수준도 아닌데 나 사용 금지한 홍길동은 사용 금지”… 과연 누구의 정치적 입장과 누구의 사정에 맞춰야 할까요? 이미 오픈소스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즉 테러리스트에게 오픈소스를 허용해야 한다는 얘기는 테러에 대한 옹호와는 별개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LGPL은 다른 오픈소스 라이선스와 마찬가지로 “차별 없이” 파생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가 나쁘다고 해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테러 정보를 주고 받는 테러리스트를 저작권 위반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카카오가 큰 회사이고 거래 관계에 있어서 기분 나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오픈소스 파생물을 저작권 위반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물론 역으로 말해 “오픈소스를 정당하게 사용했다”는 말이 “모든 점에 있어서 잘 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차별 없음”이라는 원칙을 지키는데 사형제 폐지, 낙태 합법화 등에 대한 의견과는 무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작권/라이선스 문제가 아니라 도덕/도의/기분/생태계/… 문제다”라고 주제를 돌리고 싶은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덧붙입니다. 아예 오픈소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기업 사이의 문제로 저 개인적으로는 별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픈소스라는 말이 전면에 나오고 동시에 저작권/라이선스 문제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른 얘기를 시작하기는 힘듭니다. 더 이상 오픈소스라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20년 전부터 알려진 그 오픈소스가 아닌 “차별을 허용하는” 오픈소스 얘기를 하는 꼴이 됩니다. 오픈소스 라이선스에 들어있는 보장과 제한은 저작권자와 사용자 어느 쪽에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편이 때로는 정치적 입장 차이를 넘어서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 절실한 문제 때문에 오픈소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게 오픈소스에 도움이 될까요?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오픈소스를 선택한 사람들과 집단들이 오픈소스 생태계를 구성합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른 모두의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오픈소스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지금까지 왔다면 지금의 오픈소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픈소스 관련자로서 올챙이 쪽 주장에 공감은 고사하고 반감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tags: license - opinion - 라이선스 - 의견